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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느리게 걷는 시간

방황의 끝, 목적지로 가는 길목.

by  Nello  2020. 2. 5.

 

동년배들과 비교하면 어린 나이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이십 대에는 좀처럼 한 회사를 진득하게 다니지 못했다. 여러모로 경험이 없으니 무엇이 좋고 나쁜지 알 수 없었고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못하고 있는 건지도 판가름할 수 없으니 막연하게 불안하기만 했던 것 같다.

 

처음 들어간 회사는 전공 교수의 추천으로 들어간 곳이었다. 자그마한 회사지만 직원의 상당수가 동문이고 기술력도 갖추고 있으니 몇 년 죽었다. 생각하고 일하다 보면 앞으로 밥벌이는 문제없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일의 특성상 야근이 잦았고 출장이 많았다. 일은 때때로 위험했고, 남자들만 있는 회사이다 보니 회사의 분위기는 매우 수직적이고 권위적이었다.

 

언젠가는 상사 및 동기들과 모여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모두가 웃으며 대화를 하다가 동기 한 명이 흥분했는지 말이 조금 많아졌는데 그 순간 한 상사로부터 따귀를 맞았다. 분위기는 금세 싸늘해졌고 나를 포함한 입사 동기들은 바로 표정을 굳혀야 했다. 지금 생각해봐도 따귀를 맞을 만큼 말이 많지도 않았고, 버릇이 없지도 않았다. “이 새끼가 왜 이렇게 나대?” 따귀를 올려붙인 상사의 뒷말이었다. 입사 동기가 여럿 있었지만, 그중에서 퇴사할 때까지 폭력을 당하지 않은 건 내가 유일했다.

 

그 회사는 1년을 조금 더 넘기고 퇴사했다. 출근 자체가 너무나 큰 걱정이었고 부담이었기 때문이다. 늘 기가 죽어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일을 해야 했다. 하루라도 구박을 받지 않는 날이 없었고 상사들은 실컷 구박하고 술 한잔 사 먹이면 모든 게 해결된 것처럼 굴었다. 그 외에도 일의 특성상 야근과 출장이 잦았다. 신입사원으로서 딱히 중요한 일을 한다고 볼 수는 없었지만, 이것이 내 미래라고 생각하니 암담할 뿐이었다. 실제로 상사 중에는 노총각이나 이혼한 상사들이 태반이었다. 사람들 간의 관계라도 좋았다면 좀 더 오랜 기간 일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도 아니었고 그런 이유로 당연히 일이 재밌지도 않았으며 그렇다고 연봉이 높은 것도, 갈 곳이 없는 것도 아니었기에 퇴사를 결심했다.

 

그 이후로는 내 전공과 관련된 직장이 모두 그런 식인 줄 알고 아예 다른 직종을 알아봤었다. 요리사를 해볼까 싶기도 했고, 평소에 관심을 두었던 디자인 쪽으로 이력서를 넣어보기도 했지만, 비전공자로서 다른 업종에 취직한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산업디자인 관련 신입사원을 모집한다는 공고에 이력서를 넣고 금세 면접 일자가 잡혀서 가봤더니 사장은 모집공고와는 다른 업무를 하게 될 거라고 했다. 소규모 회사였기 때문에 지원자가 많지 않아 사람을 끌어모으기 위해 일단 공고를 내고 면접을 보러 오면 회유하는 식이었다. 나 또한 전공이 아니므로 그런 회사에 지원한 것이었지만 내가 원했던 디자이너로서의 직무와 이곳저곳을 다니며 간판을 다는 일 사이에는 괴리가 상당했으므로 단박에 자리를 박차고 나온 기억도 있다.

 

어쨌거나 돈은 벌어야 했기에 다시 전공과 관련된 일자리를 찾아 취직했지만 일과 관련된 측면에선 처음 회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구미로, 울산으로, 여수로, 광양으로 출장을 다녀야 했고 주말도 없이 일해야 했다. 그렇게 6개월짜리, 1년짜리, 1년 6개월짜리 등의 반쪽짜리 경력을 쌓아가다가 이왕 이렇게 된 것 더 늦기 전에 내 꿈과 관련된 일을 한번 해보자 싶어 어느 한 지방지의 기자가 되기도 했는데 지방에서의 작은 신문사 기자라는 것은 기술자에 비교하자면 정말 너무나도 열악한 직업이었다.

마감이 있는 날엔 날 밤을 지새워야 함은 물론이고 식사는 각자 알아서 사비로 해결해야 했으며, 그런데도 급여는 아르바이트 수준에도 못 미치는 박봉이었다. 나를 담당했던 선배 기자는 그런 박봉인 직업이지만 취재하러 다니며 지역 사람들의 눈에 익숙해지면 들어오는 물건이 많고 추가로 수입이 들어오는데 제법 짭짤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지역의 국회의원이나 시의원들과의 술자리가 잦은데 술은 잘하느냐는 질문에 당시까지만 해도 기자란 진실을 탐구하고 정의를 지키는 사람들이라고 착각하고 있던 나는 큰 충격을 받고 이 짓도 못 할 짓이로구나 싶어 또 한 번 퇴사를 결심했다.

그렇게 본의 아니게 이것저것 많은 경험을 해보고 나서야 나는 결국 내가 가야 할 길은 기술자라는 다짐이 섰다. 기술인이 된다는 건 내 지적 허영을 어느 정도 만족하게 해줄 수도 있고 직업적 자긍심을 갖기에도 충분했으며, 어른들의 말마따나 잘 익혀두면 적어도 밥 굶고 살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적잖은 기간의 방황 끝에 나는 지금 산업 자동화 분야의 기술자로서 일하고 있다. 남들처럼 한 가지를 정해놓고 오랫동안 해온 게 아니라 그런지 수박 겉핥는 수준의 기술자지만 이제는 특별한 이유 없이는 직업을 바꿀 생각이 없다. 다행히도 비교적 어릴 때부터 일해온지라 많이 늦지도 않아 차근차근 경력을 쌓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일을 하다 보면 종종 중, 장년층의 상사들이나 거래처 지인들로부터 이런 말을 듣게 된다. “요즘 애들은 도무지 근성이 없어, 일이 조금만 힘들어도 관두고, 조금만 혼을 내도 관둔다니까?” 나는 무턱대고 그들이 근성이 없어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도 자신에게 맞는 회사와 일이 무엇일까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방황의 끝, 그 목적지로 가는 길목이었던 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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